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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탐방27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고종의 궁궐/을사늑약 치욕의 역사 현장 덕수궁은 대한제국의 황궁/고종의 궁궐/을사늑약 치욕의 역사 현장 덕수궁은 1907년 이전은 경운궁으로 불렸던 궁궐이었습니다. 1905년 경운궁 중명전에서 일제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었으며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을 세계 각국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은 밀사를 파견했습니다. 이 사건이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고종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강제로 퇴위를 당하고 아들인 순종이 황제로 즉위를 하게 됩니다. 순종은 즉위한 후 창덕궁 으로 궁을 옮기게 되었으며 경운궁은 그때 부터 덕수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덕수궁으로 불리기 전 경운궁은 대한제국의 황궁이였으며 고종의 궁궐이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가 일제에 의해 살해를 당하고 위험을 느꼈.. 2022. 9. 23.
창경궁 후원은 일제강점기 유원지 아픈 역사 현장 창경궁 후원은 일제강점기 유원지 아픈 역사 현장 조선왕조는 건국 초기 경복궁을 법궁으로 하고 보조 궁궐로 창덕궁을 사용하는 양궐 체제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은 경복궁 보다 창덕궁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왕실 가족들도 늘어나 창덕궁의 생활공간도 점점 좁아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수강궁을 확장하고 이름도 창경궁으로 바꾸 었습니다. 창경궁 남쪽에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종묘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창덕궁과 맞닿아 있어 두 궁궐을 동궐이라고 불렀습 니다. 조선왕조는 창경궁과 창덕궁을 별개 의 공간이 아닌 하나의 공간으로 여겼으며 창덕궁의 후원을 같이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창경궁이 일제에 의해 크게 훼손되기 시작한 시기는 1907년 순종이 즉위하면서 거처를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겨온 뒤.. 2022. 9. 20.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후원. 비원. 왕실 정원. 궁중 정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후원. 비원. 왕실 정원. 궁중 정원 조선 3대 왕인 태종 때 건립된 창덕궁 후원은 창덕궁 건립과 함께 조성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인조 때부터 복원을 시작하 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은 다른 나라들의 인위적인 정원 들 과는 달리 자연지형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정원을 조성한 자연 친화적이며 가장 한국적인 정원입니다. 창덕궁 후원에는 골짜기 지형에 어울리게 조성된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옥류천, 4개의 정원이 있습니다. 창덕궁 후원은 비원이라고도 부르는데 왕실 정원입니다. 조선시대 왕과 왕실 가족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조성된 곳으로 창경궁과 함께 사용했으며 우리나라 최대 궁중 정원입니다. 199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 2022. 9. 14.
창경궁은 일제강점기 동물원 조선시대 사극의 무대 창경궁은 사도세자. 장희빈. 대장금 등 조선왕실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극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며, 일제 강점기 조선왕조 궁궐인 창경궁이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격이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는 궁궐입니다. 해방 후에도 40여 년 동안 창경원으로 불렸으나 1980년대 궁궐 복원을 시작하면서 원래 이름인 창경궁으로 이름을 되찾았습니다. 창경궁이 지어진 내력 2022년 9월 1일 조선왕조 궁궐 중 세 번째로 지어진 창경궁을 다녀왔습니다. 창경궁은 1484년 제9대 성종이 세분의 대비이신 할머니 정희왕후, 어머니 소혜왕후 작은 어머니 안순왕후가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고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었습니다. 수강궁은 제4대 세종이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궁궐입니다. 창경.. 2022. 9. 4.